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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프로세스를 촘촘하게 만드는 사람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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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쿠팡의 조직 문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쿠팡의 인재론은 한 축은 실적, 한 축은 가치관으로 평가한다.
실적이 좋고 가치관이 훌륭한 사람은 스타(star),
실적도 안 되고 가치관이 엉망인 사람은 개(dog)다.
실적은 안 좋고 가치관이 잘 맞는 사람은 물음표(?)다.
가장 문제는 실적이 좋지만 가치관이 안 맞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독(poison)으로 분류한다.
장기적으로 독을 밀어내고 물음표를 과감하게 기용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문화가 항상 앞서야 한다.
회사에 핵심 가치가 필요한 이유다.

쿠팡을 다녀본 적은 없지만, 각자가 경험한 조직들을 기준으로 이 스타(star), 개(dog), 물음표(?), 독(poison) 에 대해 나눴다.
그러다 어떤 사람이 독(poison) 인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는 "프로세스/제도를 더 촘촘하게 만드는 사람이 독인것 같다" 는 이야기를 했다.


A 회사는 바쁘게 일 하느라 저녁 식사를 제때 못하는 분들을 위해 김밥을 준비했다.
"저녁 식사 못하고 야근하신 분들은 김밥 드세요" 라는 회사의 공지가 나왔다.
일부의 사람이 30분 야근을 하면서 퇴근길에 이 김밥을 챙겨가기 시작했다.
김밥의 양이 부족해서 원래 목적이였던 사람들은 여전히 제때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이후에는 김밥을 가져갈 수 있는 조건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 9시 이후 퇴근 하시는 분들만 가져갈 수 있습니다.
  • 김밥 수령하신 분들은 이름을 작성해주세요.
  • 대리 수령은 안됩니다.

등등.

하나둘씩 김밥을 먹을 수 있는 조건들이 촘촘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하니 이제는 진짜 김밥을 먹길 바랬던 대상자들도 먹지 않게 되었다.
"김밥을 먹으면 8시까지 무조건 야근 해야하는구나"
"김밥 하나 먹으려고 너무 짜친다 그냥 안먹고 일 하련다"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소수의 오남용 하는 사람들로 조직의 프로세스, 제도는 더 촘촘하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촘촘하게 만들수록 조직은 제대로 굴러가기 힘들고 짜치는 조직이 되어간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다.
"아니 김밥 그거 얼마나 한다고 넉넉하게 준비하면 되지 뭐 이렇게 치사하게 구냐" 라고.
근데 김밥이라는건 조직에서 관리하는 일종의 리소스를 표현한 것 뿐이다.

회사의 모든 리소스는 항상 제한된 상황에서 운영된다.
아무리 필요한 사람이 있더라도 의도와 다르게 오남용하는 것까지 고려해서 충분한 리소스가 확보되어야만 모든 프로세스와 제도가 도입되어야하는 것인가?
아무리 필요한 사람이 있더라도 그만큼의 리소스가 확보되지 않으면 도입을 못하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더 열정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지원해야할 것들이 있다면 더 지원해야하고, 프로세스와 제도는 더 느슨하게, 더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렇지만 특정 몇 명으로 인해 프로세스와 제도가 계속해서 촘촘하게 만들어진다면 그들은 조직을 망치는 사람들로서 경계해야한다.

"기준이 모호하니깐 사람들이 프로세스를 악용한다" 라는 이야기는 반은 맞지만 반은 맞지 않다.
기준을 명확하게 만들려고, "이럴때는 이렇게 하셔야 하고, 저럴때는 저렇게 하셔야 합니다" 라는 형태로 프로세스가 계속해서 촘촘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더 성과내기 좋은 조직이란 말인가?

"프로세스가 모호하다고 느껴질 때 그때 개인의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하느냐, 전체에 이득이 되는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프로세스가 더 촘촘해지기도 하고, 더 느슨해지기도 한다.

프로세스가 모든 상황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이드를 할 순 없다.
프로세스가 촘촘할수록 개인별 역량과 도전은 제한받을 수 밖에 없다.
프로세스 혹은 제도는 최소한의 기본을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가치판단이 모호할 때는 회사의 문화, 가치관에 따라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제도는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게 만들되, 문화, 가치관에 대한 교육에 좀 더 집중하는 편이 맞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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