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시간에 퇴근을 하면 종종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너무 늦은 시간에 퇴근을 하면 보통은 바로 회사 택시를 불러 타고 가곤 하는데, 그날은 머리도 식힐겸 조금은 걷다가 택시를 타려고 했다.
저녁 11시가 넘는 늦은 시간.
주변에 아무도 없는, 지나가는 차도 없는 아주 조용한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기다리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지켜보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도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지켜보게 되었다.
신호등의 불이 켜지고나서야 건너가는 모습을 보면서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융통성이 없는 것일 수 있다.
지나가는 차 하나 없어 사고날 일이 없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으니 누군가 이상한 눈길로 볼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 굳이 기다리지 않고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것이 늦은 시간에 집에 빨리 갈 수 있고, 우린 이걸 융통성이라고 부른다.
아주 예전에 이경규씨가 진행한 "양심냉장고"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1화의 양심 주제는 "차량 정지선을 지키는 사람" 을 찾는 것이였다.
새벽 4시까지도 그 어느 차량도 지키지 않았다.
같이 진행하시는 분도 "우리나라 사람은 법대로 살면 손해 본다고!" 라고 외치는 와중에 4시 13분이 되어서야 하나의 소형 차량이 아무도 없는 그 시간에 정지선을 지켰다.
알고보니 그 차량은 장애인 부부가 운전을 하고 있었고, 이경규씨는 "왜 신호를 지키셨나요?" 라는 질문을 한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데..." 를 생략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지체장애인 남편분께서 하신 답변은 "내...가...늘...지켜요." 였다.
이 1화 방송이 나가고, 다음날 신문의 제목은 "누가 장애인인가... 사실은 우리가 장애인" 이였다.
효율성, 융통성을 이야기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이득을 취하게 된다.
그렇게 융통성을 이유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무언가가 계속해서 마모되어오진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융통성" 이란 말로 나는 얼마나 마모 되어왔을까?
꼭 이런 점이 아니더라도,
나 스스로 약속한 것들이 있다.
남이 보지 않아도,
주변에서 알아봐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한 약속이기에 지키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