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순 없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근데 그 내면을 살펴보면 사실은 "해야하지만 하기 싫은 이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을까?" 에 가까웠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 싫었고, 수업 빈 시간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니는 것도 싫었다.
근데 지금은 안다.
그때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만들어서 지금도 아침 시간을 활용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때 시간이 빌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사회 생활을 시작할때 빚 없이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들이 모여 결국 졸업 직전에 개발자로 방향을 전환해도 큰 부채감 없이 몰입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차곡차곡 모아둔 돈으로 서울에서 별도의 아르바이트 없이 프로그래밍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고,
아침마다 출근길을 피해 일찍가서 남들보다는 조금 더 공부할 수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을 만날 때마다 하기 싫다고, 무엇인지는 모를 파랑새처럼 생각하는 어딘가엔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고" 불평, 불만 하는 것도 그만뒀다.
그리고 명확하게 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았다면 현재의 해야하는 일에 몰입하기로 했다.
불편한 일도 굳이 피하지 않기로 했다.
불편한 일을 계속 피해서는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할때 밀려있던 불편한 것들이 모두 합쳐서 정작 하고 싶은 일을 못하니 말이다.
매번 이사가는게 싫어서 그냥 대출 받아 집을 살까 생각을 했다.
매번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하는게 귀찮아서 차를 살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았다.
여전히 전세도 아닌 월세로 생활하고 있고,
매번 대중교통과 도보를 이용해서 출근을 하고 있다.
조금 불편할 수 있지만, 못할 수준의 일은 아니다.
하기 싫은 일들이지만, 이걸 유지했기 때문에 지금의 회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모두 다 했다면 아마 나는 전 회사를 영영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대출금 상환과 월 평균 생활 수준을 맞추기 위해서 급여를 줄이면서 회사를 옮기는 선택을 못하기 때문이다.
높은 급여 수준을 맞춰줄 수 있는 회사들안에서만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정말 내가 가고 싶었던 지금의 이 회사를 선택 못했을 것이다.
"선택의 순간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으려면, 해야하는 일들, 불편한 일들을 그간 계속 해왔어야만 가능하다" 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택도 운처럼 모을 수 있다.
이렇게 모인 선택들이 결국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왔을때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지금 내가 해야하는 일이 가득한 상황에 있다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의 에너지를 모으는 시간이라고 생각해보자.
물론 이만큼의 선택의 대가로 신혼여행에서는 정말 Flex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