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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실패한 내일과 완벽한 오늘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4.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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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혼 여행을 가면서 비행기에서 와이프가 잠들때마다 오늘만 사는 기사 라는 웹 소설을 봤다.

주인공은 예전에 본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 처럼 죽으면 그 날로 다시 되살아나는 저주에 걸려있는 채로 매일 하루를 반복하며 목표로 하는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이다.

소울풍 작가님의 과거 작품을 좋아하기도 했고, 한산이가 작가님과 함께 하시는 유튜브를 통해 새 작품 소식을 듣고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짬이 되어 이제야 보기 시작했다.

소설 45화에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적진에 고립되는 높은 난이도의 상황에 처하게 되어 계속 죽게 된다.
매일 똑같은 상황에서 죽고, 되살아나고, 노력하고 다시 시도하고의 하루를 반복하다가 결국 여러 운과 그간의 노력이 합쳐져 아슬아슬하게 그 상황을 돌파하게 된다.
그리고 함께한 동료 10명 중 6명이 죽고, 본인 역시 큰 상처를 얻게 된다.

어렵게 상황을 돌파했지만, 완벽하게 돌파한 것은 아니다.
다시 시작해서 조금 더 노력해본다면 좀 더 나은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니 저주를 건 사신이 솔깃한 유혹을 한다.

"갈고닦아서 다시 오늘을 맞이해. 죽으면 더 완벽한 오늘을 시작할 수 있잖아."
"다시 시작하면 더 잘할 수 있을것 같은데?"

이런 유혹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생각을 확고하게 한다.

"오늘을 반복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니다.
실패한 내일이, 완벽한 오늘보다 낫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이유다.
수없이 오늘을 반복하다 보면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없다.
'오늘'은 반은 운이 따라주기도 한 오늘이었다.
그 운이 다시 시작하는 오늘에서 찾아오리란 법은 없다.
그렇다면 언제나 그러하듯 내일을 향해 걸어가면 그만이다."


요즘 나오는 게임들에는 '리세마라' 라고 하여 원하는 캐릭터가 나올때까지 무한정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적정 수준의 캐릭터에 만족해야하는데, 내가 원하는 완벽한 캐릭터가 나올때까지 계속 리셋만 시도하면 캐릭터를 뽑는 것만 무한 반복하다가 게임이 끝난다.

와이프와 연애 기간동안에도 크게 싸울때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지 않을까?" 같은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꼭 연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경우에서 할 수 있다.

"이 학과는 별로야. 다시 수능을 쳐야겠다."
"이런 사람인줄 몰랐다. 다른 사람과 다시 시작하고 싶다."
"팀원들이 너무 실망스럽다. 다른 팀원들과 다시 시작하고 싶다."
"내가 생각했던 조직/서비스가 아니다. 다른 곳으로 가야겠다."

그리고 또 다시 불편한 상황, 원치 않던 상황, 완벽하지 않은 상황을 만나게 되고 그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이게 반복되어서 매번 어떤 특정 기간, 주기를 넘기지 못하고 딱 그 기간만의 경험만 계속한다.

내가 원하던 사람, 상황, 조건이 오면 다를 거라고, 더 나은 오늘이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지금보다 더 나은 상황이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깔끔하게 지금의 이 상황과 환경을 경험하고 싶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진흙탕이다.

진흙탕이더라도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 현재가 썩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렇다하더라도 앞으로 전진한 사람이 매번 마음에 들지 않을때마다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건강한 사람이 된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계속 다음으로 나아갔으니 말이다.

완벽하지 않은 오늘에 대해서 조금은 너그럽게 바라봐야겠다. 

물론 해볼만큼 해봤지만 그래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면 그땐 당연히 새로 시작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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