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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그 연차치곤 잘하네"의 함정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16.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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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스터디를 많이 하다보니 다양한 연차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10년차 이상의 개발자분도 계시고, 취업준비생도 있고, 나와 비슷한 주니어 개발자 분들은 특히나 많이 만나왔다.

그러다보니 내가 했던 실수를 똑같이 하시는 분들을 보게 되서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한다.


막 줌인터넷에 입사했을 때 Javascript 스터디에 참석하여 주말마다 공부를 한적이 있다.

당시엔 SI회사에서 10개월정도 일한 경험이 있는데 스터디 참석시에 완전 생초보는 안된다해서 이전 회사 경력+현재회사 경력포함해서 일한지 1년 넘었다는 얘기를 하며 참여하게 되었다.


모든 스터디가 그렇지만 초창기엔 크게 어려운 내용도 없었을 뿐더러 회사에서 Javascript 작업이 많아서 전반적으로 쉽게쉽게 따라갈 수 있었고 몇번의 발표도 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같이 참여하신 시니어 개발자분들께서 기특하게 보시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신입 치곤 잘하네", "내가 그 연차였을때는 그정도 못했다"

등 빈말이라도 이렇게 얘기를 해주시니 이게 진짜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회사에선 진짜 매일매일 내가 바보같이 느껴지는데 여기선 연일 칭찬을 받으니 계속 받고 싶어진거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연차를 줄여서 얘기" 하는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엔 SI 경험을 얘기하지 않고 이제 막 입사하였다고 얘기하고,

이후에는 1년이 다되어가는데도 "1년이 다되었다" 고 얘기하진 않고, "아직 1년 안되었다"고 얘기하는 것이였다.


연차가 상승하는 것에 맞춰 실력을 더 올리기 보다는 연차를 올리지 않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당시에 난 "그 연차치고 잘하네" 란 문장에 중독되었던것 같다.

 

이게 언제 깨졌냐하면 회사에 내 후임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다.


(난 계속 막내이고 싶었나보다)


그전까진 막내였으니 못해도 괜찮았다.

근데 후임 입사후에 내가 뭐라도 얘기해줄게 있어야하는데 입사후 8개월이 지났음에도 스터디에서 칭찬받는거 말고는 아는게 없었다.

이게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후로는 좀 부끄럽지 않은 선임이 되고자 제대로된 학습 습관과 규칙을 가지고 현재까지 유지중이다.

(물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것은 코드리뷰를 통해 매번 개박살 나면서 깨닫고 있지만..)

그리고 어디가서도 연차는 솔직하게 얘기하고 더이상 "그 연차치곤 잘하네" 란 말을 못듣고 있다.

그게 현재 내 실력인걸 인정하니깐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이 이야기는 비단 연차에만 국한된게 아니다.

비전공자치곤 잘하네

전문대치곤 잘하네

지방대치곤 잘하네

XXX치곤 잘하네


이런 조건형 칭찬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남는게 없다.

결국 시간은 흘러간다.

5년 7년 10년이 지나면 본인이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조건들은 더이상 칭찬의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

결국은 개발을 잘하냐 못하냐로 판단을 하게 된다.

진짜 잘하는 사람에겐 ~~ 치곤 잘하네 란 말을 쓰지 않는다. 잘한다라고만 얘기한다.

조건이 붙지 않는다.

이걸 깨닫는데 난 바보같이 1년이나 걸렸다.


최근에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나와 비슷한 경우를 종종 보게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했지만 별 다른 이야기는 못해주고 있다.

실제로 이런 얘기는 육성으로 하게되면 크게 와닿기보다는 오지랖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로 작성하였다.

어쩌다 이 글이 공유되서 나처럼 이상한 것에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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