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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이력서의 서사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6.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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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에서 가끔 보이는 링크드인 밈이 있다.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한 경험을 이력서에 쓸 때, 그냥 "맥도날드 알바"라고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벌 F&B 기업에서 고객 접점 운영을 경험"했다고 쓴다.
편의점 알바는 "리테일 현장에서 재고 관리와 고객 경험을 담당"한 일이 되고, 카페 알바는 "고객 응대와 주문 처리 프로세스를 개선한 경험"이 된다.

처음 보면 웃기다.
특히 링크드인 특유의 진지한 문체와 만나면 더 그렇다.
별것 아닌 경험을 대단한 커리어처럼 포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꼭 나쁘게만 볼 일인가 싶기도 하다.

맥도날드에서 일했다는 사실은 작아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는 피크타임의 압박, 반복되는 주문, 실수하면 바로 드러나는 현장, 낯선 고객을 상대하는 긴장,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맞춰 움직이는 감각이 있다.
그걸 "그냥 알바"라고만 부르면 경험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반대로 "글로벌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표준화된 운영과 고객 응대를 경험했다"고 말하면, 같은 사실 안에서 다른 의미가 드러난다.

그래서 이 밈이 웃기면서도 완전히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같은 경험을 두고도, 어디까지가 해석이고 어디부터가 과장인지는 문장 하나 차이로 갈린다.

"글로벌 F&B 기업의 매출 성장 전략을 리드했다"고 쓰면 거짓에 가깝다.
하지만 "글로벌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고객 응대, 주문 처리, 동료 협업을 경험했다"고 쓰면 그것은 포장이라기보다 해석이다.
자신이 한 일을 더 정확한 언어로 다시 보는 일이다.

이 밈을 보고 떠오른 논문이 있었다.
"Seeing Your Life Story as a Hero's Journey Increases Meaning in Life"라는 제목의 연구다.
자기 삶을 영웅의 여정처럼 인식할수록 삶의 의미감이 높아진다는 내용이다.
영웅의 여정이라고 해서 꼭 용을 물리치거나 세계를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익숙한 세계를 떠나고, 낯선 과제를 만나고, 조력자를 만나고, 시련을 겪고, 이전과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오는 구조다.

생각해보면 많은 경험이 그렇다.

첫 아르바이트도 그렇고, 첫 회사도 그렇고, 처음 맡은 장애 대응도 그렇다.
당시에는 그저 정신없이 지나간 일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난 뒤 돌아보면 그 안에 나를 바꾼 장면들이 있다.
처음으로 돈을 벌어본 감각, 고객 앞에서 내 감정을 조절한 경험, 누군가와 같이 일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발견, 매뉴얼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몸으로 알게 된 순간 같은 것들이다.

우리는 남의 이력을 볼 때는 과장을 잘 찾아낸다.
"저걸 저렇게까지 쓴다고?" 하고 웃는다.
그리고 그 냉소적인 시선을 자기 삶에도 그대로 들이댄다.
"그냥 알바였어."
"그냥 시키는 일 한 거지."
"별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사이에 실제로 배운 것들까지 같이 사라진다.
남들이 내 일을 작게 보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까지 내가 지나온 시간을 굳이 별볼 일 없는 일로 만들 필요는 없다.

앤절라 더크워스의 "그릿"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 명의 벽돌공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첫 번째 사람은 벽돌을 쌓고 있다고 답한다.
두 번째 사람은 교회를 짓고 있다고 답한다.
세 번째 사람은 하느님의 성전을 짓고 있다고 답한다.

세 사람은 같은 일을 하고 있다.
손에 든 도구도 같고, 쌓고 있는 벽돌도 같다.
그런데 그 일을 바라보는 방식은 다르다.
첫 번째 사람에게 그것은 생업이고, 두 번째 사람에게는 직업이며, 세 번째 사람에게는 천직이다.

세 번째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벽돌을 쌓고 있었다.
동시에 성전을 짓고 있었다.
눈앞의 행위만 보면 벽돌 쌓기지만, 그 일이 연결되는 더 큰 맥락까지 보면 성전을 짓는 일이 된다.

내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면 과장이다.
벽돌 하나를 얹었을 뿐인데 성당의 설계를 총괄했다고 말하면 거짓이다.
하지만 내가 얹은 벽돌이 어떤 건물의 일부였는지, 그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그 경험이 내 안에서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거짓이 아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는 단순히 주문을 받았는가, 아니면 고객이 몰리는 현장에서 감정과 속도를 조율하는 법을 배웠는가.
나는 단순히 벽돌을 쌓았는가, 아니면 오래 남을 무언가의 일부를 만들고 있었는가.
그 일을 밖에서 어떻게 부르는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안에서 그 일을 어떤 문장으로 남길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돌아보면, 만족스러웠던 시기가 꼭 대단한 사건이 많았던 때만은 아니었다.
같은 사건도 어떤 이야기 안에 놓느냐에 따라 다르게 남는다.
어떤 사람에게 첫 아르바이트는 단순한 시급 노동으로 남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처음 몸으로 배운 시간이 된다.

서사는 사실의 의미를 다시 바라보는 일이다.
내가 지나온 시간을 어떤 이야기 안에 놓을지 선택하는 일이다.

스스로가 걸어온 길을 굳이 별볼 일 없이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보든, 내가 어떤 문장으로 그 일을 남기느냐가 내 삶의 만족도에 오래 영향을 준다.
그러니 그간의 내 여정에 서사를 붙여 바라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