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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나그네의 겉 옷을 벗긴건 햇살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6.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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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한참 PT를 받을 때가 있었다.
PT만 하던 곳이라 그 시간에는 거의 나만 운동을 했다.

운동이 끝나면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어느 날은 PT 선생님이 칭찬을 하시는거다.

"동욱님이 샤워하고 나오면 항상 샤워실이 깨끗해요.
제가 청소하는 것보다 더 깨끗한 것 같아요" 라고.

샤워하고 나오면서 뒷정리를 굳이 신경쓰면서 하진 않았다.
근데 그런 얘기를 듣고나니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샤워가 끝나면 항상 한번 더 돌아보고 정리할 수 있는 건 정리하고 나왔다.

면도기 등 일회용품들이 널브러져 있으면 주워서 버렸다.
어쩔 때는 그 전 분이 사용하고 버리고 간 일회용 샤워타월을 주워서 버리기도 했다.

마지막에 나온 사람이 "나"이고, PT 선생님은 내가 그걸 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상한 느낌이긴 한데,
"이건 내가 한 게 아니니까, 내가 굳이 버릴 필요는 없지."
그렇게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엔 "내가 쓴 건 맞지만, 다른 사람이 쓴 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 라고 핑계가 점점 자라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다 치우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사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PT 선생님은 나를 "머문 자리도 항상 깨끗하게 정리하는 좋은 사람" 이라고 생각해주신 거니까.

규칙을 빡빡하게 정하고, 지키지 않았을 때 패널티를 먹이고 하면 최소한의 무언가는 될 수 있다.
근데 그 이상으로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하게 만들진 못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바꿀 수 있는 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나그네의 겉 옷을 벗긴건 차디찬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살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