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탐 강사님 중에 내가 되게 좋아하는 분이 계셨다.
근데 그분은 물리만 가르치셨다.
나는 그분 스타일이 너무 좋았는데, 생물이나 화학을 배울 때는 다른 강사님께 배워야 했다.
그게 싫었다.
근데 만약 그분이 갑자기 "나 생물도 가르칠게"라고 하면?
바로 들었을 것 같다.
물론, 당시에는 불가능했지만,
AI가 생긴 뒤에는 그게 아예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게 됐다.
얼마 전 한 주니어 개발자분과 티타임을 가졌는데, 바로 그런 일을 해낸 분이었다.
군 복무 중에 코딩을 독학하고, 전역 후 바로 실무에 뛰어든 분이었다.
그분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좋아하는 지식 공유자분의 교수법을 AI 지시사항에 통째로 넣어놓고, 그 스타일대로 코드 리뷰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이 기술이 발전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베스트 케이스와 워스트 케이스를 보여주고, 현재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짚어주는 방식.
강의를 들을 때 좋았던 그 설명 방식을 통째로 AI에게 심어놓은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이 정한 게임의 난이도를, 이제는 개인이 AI로 조절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바둑에서는 접바둑이라는 것이 있다.
실력 차이가 나는 상대와 붙을 때, 약한 쪽이 바둑판의 화점에 돌을 미리 몇 개 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기력이 한두 단계만 차이 나도 맞바둑에서는 이기기 매우 어렵다.
실수를 하지 않는 상대에게서 실수를 받아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정하게 겨뤄볼 수 있도록, 실력 차이만큼 돌을 깔아놓고 시작한다.
진짜 고수랑 나랑 있는데, 똑같이 동등하게 시작하면 바둑을 접게 된다.
시작부터 압도당하니까 게임 자체에 흥미가 사라진다.
근데 돌을 깔아놓고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할 만하다.
비등비등하다.
그러면 이제 돌을 하나 줄여본다.
또 줄여본다.
그러면 판을 뜨지 않고 계속 둘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돌을 덜 깔고도 같은 판에 앉게 된다.
AI 도구가 바로 그런 것 같다.
대신 두어주는 대리 대국이 아니라, 돌을 깔아주는 접바둑이다.
예전에는 이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았다.
누가 좋은 강의를 만들어주거나, 좋은 책을 써주거나, 좋은 멘토를 만나야만 가능했다.
나한테 맞는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조차 누군가 알려줘야 알 수 있었다.
그 행운이 없으면, 세상이 정해놓은 난이도 그대로 부딪혀야 했다.
이제는 본인이 직접 조절할 수 있다.
"난 이 정도 난이도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아."
조절하고, 조절하고, 또 조절하면서 끝까지 갈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면, 그분이 한 일이 바로 그거였다.
좋아하는 지식 공유자분의 교수법을 AI에 심어놓은 것이다.
그건 접바둑에서 돌을 깔아놓는 것과 같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기술이라는 고수의 판 위에, 나한테 맞는 교수법이라는 돌을 미리 깔아놓고 앉은 것이다.
그러니까 게임을 계속 둘 수 있었다.
그렇게 배워보니 어떤지도 여쭤봤다.
돌아온 답이 인상 깊었다.
"인생 전반적으로 모든 학습 방법 중 지금이 제일 효과적이라고 느끼고 있다. 요즘은 뭘 배우고 적용하기가 너무 좋은 시대 같다."
AI로 인해 어려워졌다고들 하지만, 이렇게 자기만의 코치로 활용하면서 오히려 동력을 얻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맞는 만큼 돌을 깔고, 판을 뜨지 않는 것.
AI는 대신 두는 도구가 아니라, 내가 계속 둘 수 있게 해주는 접바둑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