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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해야할 경험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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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때 학과나 학회 활동은 거의 하지 않고, 농구 동아리에서 동기들이랑 놀기만 하다가 같이 지방의 대회를 나갔다.

농구라는 운동은 한 팀에서 5명만 출전할 수 있어서 10명이 넘는 동기들끼리 교체해가며 시합에 참여했다.
경기에 출전하여 뛰고 있을때 그 경기는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가 그 생각을 하는 중 나와 같은 포지션을 뛰는 친구가 감독을 보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봤다.
당시에 자존감도 낮고 자신감도 없던 나는 그 친구가 "내가 너무 못하니 교체해야한다" 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나는 교체되서 벤치로 들어왔다.
그 친구가 이야기해서 교체되었다는 생각에 벤치로 오자마자 친구에게 화를 냈다.
"왜 맘대로 나를 교체해야한다고 감독에게 이야기하냐고" 말이다.

근데 실상은 내가 못하니 교체하라고 했던 것이 아니라, "지금의 작전이 통하지 않으니 다른 작전을 이야기 했던 것" 이고, "그 작전에 더 적합한 친구로 감독 친구가 교체 했던 것"이였다.

왜 내가 교체된 건지 감독 친구에게 물어보기만 해도 해결되는 것을 나 혼자만의 망상으로 큰 사건이 되었다.
내 자격지심이 친구들을 오해하게 만들고, 나 스스로도 망가뜨린셈이다.

너무 큰 오해를 해서 친구들한테도 사과를 연거푸 했다.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친구들도 그럴수 있다고 넘겨줘서 남은 시합도 끝내고 이후 회식도 하면서 그 대회는 잘 마무리 되었다.

친구들은 계속 괜찮다고 했는데, 나는 그 일이 너무 부끄러웠고 두고두고 곱씹었다.

이 사건이 내 20대의 자아 형성에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직접적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턱대고 부정적으로 해석해서 타인을 오해하면 안되고, 속단하지 말아야 한다" 를 배우게 된 것이다.

이 경험은 두고두고 큰 도움이 되었다.
회사 생활이나 커뮤니티 활동 등 여러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발생하는 많은 오해들에 대해 속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미리부터 나를 미워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타인을 의심할 필요가 없고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 제스처, 눈빛, 행동 등 오해할 수 있는 여지는 많지만 그걸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해석하지 않는 것도 온전히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대의 부끄러운 경험 한번으로 두고두고 큰 도움을 받았다.


침착맨 유튜브에서 가장 좋아하는 회차가 김풍, 주호민님과 함께한 연애상담편이다.

연애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중간에 나오는 "그 나이때에 해야할 경험이라는 것이 있다" 는 김풍 작가님의 말을 특히 좋아한다.

"그 나이때에 해야할 경험을 해야 이상한 어른이 되지 않고, 건강한 어른이 될 수 있으니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하지말고 기꺼이 부끄러움을 감수하고서라도 많은 것들을 실행에 옮기라" 는 내용이 20대의 부끄러웠던 그 경험을 생각나게 해서 좋았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다보면 부끄러운 경험을 언제든 할 수 있다.
혹은 상처받는 경험도 언제든 할 수 있다.

그런 부끄러운 경험, 상처받는 경험으로 인해 배우는게 정말 많다.
그리고 그걸로 인해서 스스로가 더 건강하게 변한다.
그러니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는게 무서워서 피하려고만 하지말고, 가능하면 더 많이 대화하고 어울리고 하면서 여러 다양한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

내 주변도, 미래의 나도 말이다.

물론 이게 그 나이때에 맞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났으니 늦었으니 큰일났음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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