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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가장 좋아하진 않는 프로그래밍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3.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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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받아 보는 고민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일이 프로그래밍이 아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인데,
본인은 시간이 날때마다 그림을 그리는데 그 시간이 너무 재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 그리러 가는 시간이 항상 기다려지고 빨리 퇴근하고 싶은 생각을 계속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프로그래밍보다 그림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농담으로 이야기하는데, 자긴 그걸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근데 나는 아무리 고민을 들어봐도 프로그래밍 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게 왜 문제지? 라는 생각을 했다.

좀 더 고민을 들어보니 프로그래머로서 프로그래밍보다 더 좋아하는게 있어선 안된다고 믿고 있던 것이였다.
커리어 초반에 같은 팀에 있던 사수를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라면 프로그래밍을 가장 좋아해야만 한다고 일종의 가스라이팅(?) 처럼 된 것 같았다.

가장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꼭 같을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꼭 같은 것이 가장 좋은가? 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고 말이다.

가장 최악은 프로그래머라면 프로그래밍을 가장 좋아해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어, 가장 행복해하는 취미 활동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힘들때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가장 행복할때 어떤 일을 하는지를 보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근데 내가 가장 스트레스 받을때 프로그래밍을 하냐? 라고 한다면 난 아니다.

나는 책보고 글 쓰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대형 프로젝트나 장기간의 과제가 끝나고 나면 쌓아둔 책 보고, 쓰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종일 써낸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작가를 직업으로서 고려하진 않는다.

직업은 크게 3가지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 일 외적으로 개인 시간에 해도 재미를 느끼고 있으며
  •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감당 가능하며
  • 평균 소득이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시장이 원하는 일

재능의 유무는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나한텐 작가라는 직업은 이 조건들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래밍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니지만, 평생 해도 좋다고 생각할 정도로 좋아하면서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이였다.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게 다른 일보다 심하지 않았다.
첫 월급으로 144만원을 받았지만, 이정도면 경제적 자립은 가능하고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성장할 가능성도 높은 직업이였다.

작가, 시인 등 전업 글 작가분들중에서는 상위 0.1%만이 일반 직장인 보다 높은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돈 안 되는 직업인 시인은 뭘로 먹고 사나

그래서 직업으로서 프로그래머를 선택했다.

무슨 일이든 직업으로서 대하다보면 상처 받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해서 항상 행복하기만 하는 경우는 없던 것 같다.
결국 직업은 성과를 내야하고, 그 성과를 내는 과정엔 스트레스가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 일을 위한 어떤 좋은 습관을 얼마나 꾸준히 유지하고 개선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가장 좋아한다는 감정은 퇴색될 수 있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하기 보다는 가장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이 직업이어야 한다.
감정과 상관없이 매일 매일 계속할 수 있다면 그럼 나한테 가장 잘 맞는 직업이 아닐까?

2015년 1월에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고, 중간에 6개월씩 쉴때도 있었지만, 2016년 6월부터는 매달 4개이상의 글을 썼다.
지금은 562개의 글이 작성됐다.
마찬가지로 2016년 8월부터 일일커밋을 시작했는데, 중간중간 실패하다가 2016년 11월 12일부터는 한번도 쉬지 않고 매일 커밋을 쌓았고, 곧 있으면 만 7년이 된다.

근데 나는 사실 다른 일에는 이렇게 꾸준히 하고 있는 것들이 거의 없다.
그나마 2021년에 시작한 유튜브 정도가 있는데, 이것도 아직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프로그래밍과 프로그래밍에 관련된 공부를 하는 것들만 7년, 8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서 프로그래머는 나에게 가장 맞는 직업이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 라는 속담이 있다.
엄한데 화풀이한다는 뜻이지만,
오히려 "본업에서 얻은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낼 수 있는 다른 취미 활동이 필요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종로에서는 감정을 털어낼 수 없었으니깐, 한강에서 풀었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프로그래밍보다 더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걸로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얻으면 된다.
대신 좋은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수 있다면 그건 본인에게 맞는 좋은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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