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은 단순하게
가담항설 웹툰을 보면 참 멋진 대사들이 많다.
저는 사당패 시절, 매일 결계에 갇혀 지냈는데, 저는 그곳을 영원히 나갈 수 없을 거라 믿었어요.
항상 그런 말을 들었거든요.
"여기서 절대 도망칠 수 없어"
"도망쳐도 반드시 붙잡힐 거야"
"어디에서도 널 필요로 하지 않아"
"이곳을 떠나면 넌 불행해질 거야"
어릴 때는 말을 잘 듣는게 착한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말을 듣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불행하게 만들면 벌을 받는다고.
그런데 말도 잘 듣고 남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아도 저는 왜 매일이 불행하고 괴로운 건지 너무 궁금한 거에요.
그런데 어느 날, 전국을 떠돌다 우연히 두류산 고개를 지나는데, 그 자리에서 발을 뗄 수가 없었어요.
말로만 듣던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아름다워서.
찰나가 아닌 이곳의 사계절을 다 보고 싶어서.
그리고 깨달았죠.
그동안 나는 타인의 마음에 맞는, 타인의 목적을 위한 삶을 살면서 한 번도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나를 불행하게 만든 벌을 받게 했다는 것을.
계기는 단순했지만 감정은 강렬했죠.
그리고 저는 결계를 풀었어요.
무엇이 나를 속박하고 있는지를 알았고, 무엇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를 알았으니까요.
<가담항설 90화>
"계기는 단순했지만 감정은 강렬했죠" 대사를 참 좋아한다.
90화에 관한 이야기를 할때는 타인의 목적을 위해 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내용을 많이들 언급하지만, 유독 이 대사가 좋았다.
마네킹에 걸린 옷이 너무 이뻐서 그 옷에 맞는 몸이 되려고 다이어트를 시작한다거나,
TV 속 러너의 모습이 멋져서 런닝을 시작하거나,
우연히 들은 노래 가사가 좋아서 보컬 트레이닝을 배우기 시작하는 등의 이야기를 나는 좋아한다.
그런 사소한 계기로 시작한 것이 결국 3년 5년 동안 지속되어 자신을 지탱하는 취미가 된다거나 본인이 힘들때 큰 힘이 되어주는 위로가 된다거나, 아예 인생이 바뀌거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 소개에서 언급하기로는 이 책은 저자의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고 한다.
변변한 직장도 없고, 애인에게는 버림받았으며, 같이 이야기를 나눌 친구 조차 없던 외톨이였던 저자는 혼자만의 우울한 스물아홉 생일을 보내던 중 깜깜한 터널과도 같은 인생에 절망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그러나 죽을 용기마저 내지 못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좌절하던 중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너무도 아름다운 세계, 라스베이거스의 영상을 보게 된다.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모습에 그녀는 '1년 후,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순간을 맛본 후 서른이 되는 날 죽는다' 를 결심한다.
돈을 벌기 위해 파견사원, 호스티스, 누드모델을 병행하며 죽을힘을 다해 질주하고나서 라스베이거스에서 최고의 하루를 보낸 뒤 그녀는 다시 열심히 삶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자살까지 결심한 그녀가 텔레비전 속 영상 하나로 인생이 바뀌게 된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거창한 계기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좋아하던 이성과 같은 과목을 듣기 위해 신청했던 컴퓨터 공학 과목이 개발자의 길로 이끌기도 하고,
슬램덩크가 좋아 가입한 동호회에서 20년간 가깝게 지내는 동기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블로그 글을 보고 시작한 블로그를 10년째 이어져 커리어 내내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한다.
어떤 사소한 계기가 삶을 바꿀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아주 작은 계기라도 있다면 시작해보고 있다.
딱 한 걸음만 내딛은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바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