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한 일
6월 1일에 결혼식을 했다.
수백명의 지인들 앞에서 축가를 불렀다.
혹시나 못할 수도 있으니, 와이프를 비롯해 축사를 해주는 친구에게도, 축가를 불러주는 친구에게도, 그 외 주변의 모든 이에게 이야기 하지 않고 몰래 준비했다.
노래에 자신이 없다보니 계속 연습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일도 아니다.
숨고를 통해 집 근처에서 보컬 트레이닝 하시는 선생님께 배웠다.
4, 5월 2달간 주 1회씩 진행하다가 결혼식 2주 전부터는 주 2회씩 배우고, 연습했다.
처음 보는 사람 (선생님) 앞에서 반주 없이, 마이크 없이 그냥 노래를 부르는 일은 최근 들어 가장 부끄러운 순간이였다.
'나'의 노래를 직접 듣는게 처음이였고, 그렇게 부른 노래를 녹음하고 처음 들었을때는 1절만 듣고 끌 정도로 참기 힘들었다.
원래도 노래를 잘 안하다보니 연습할때마다 계속 자신감이 없어졌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노래를 못부르는 내 모습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너무 창피스러울것 같아서 '어차피 아무도 축가하는 것을 모르니, 지금이라도 그냥 없던 일로 할까?' 라는 생각이 연습하는 내내 들었다.
신랑이 축가를 안하면 큰일나는 것도 아니고,
주변에서도 내 성향을 잘 알아서 축가한다고 생각도 안하고 있었으니 없던 일로 하는 것에 큰 문제는 없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안해도 상관없고,
연습해도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회사 일은 점점 바빠지고, 와이프와 함께 하는 시간에는 할 수 없다보니 개인 연습 시간 확보도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엔 왜 이걸 해야하나는 생각까지 들었다.
주변 지인들에게는 기술 블로그나 컨퍼런스 발표 등을 꼭 해보라는 이야기를 자주한다.
'하기 전까지는 두렵지만,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다.'
'발표 못해서 창피 당할것 같지만, 그걸 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등의 조언을 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더 해보라고 추천을 많이 했다.
타인에게는 그렇게 조언하고 충고하면서 정작 나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일, 창피당할 것 같은 일에 도망치려는 내 모습이 꼴사나웠다.
별일 아닌 이런 일에도 도망치면 나 스스로가 너무 가짜가 될 것 같았다.
입 밖으로 꺼내는 말과 실제 본인의 행동이 다른 그런 가짜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결혼식 축가라는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여기서의 결정이 인생에서 되게 큰 분기점이라고 생각했다.
망하면 망하는대로,
잘되면 잘되는대로 (그럴 일은 없다고 당시엔 생각했지만)
"이 축가 에피소드를 블로그로 써야지" 생각을 했다.
모든게 다 게임속 에피소드처럼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눈 딱 감고 끝까지 연습하고, 결혼식 당일에도 무사히 축가를 불렀다.
(끝나고 와이프랑 박장대소 하긴 했지만...)
나이가 들고, 연차가 쌓이면서 예전과 다르게 '창피하다' 라는 감정을 예전 보다 더 견디기 힘들어진다.
'체면' 이라는 것을 왜 어른들이 이야기했는지도 점점 이해가 된다.
내가 바보같아 지는 그 순간을 참기가 너무 힘들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예전처럼 어설픈 영역, 익숙하지 않은 영역으로의 시도를 점점 힘들게 느껴지는것 싶다.
예전에 나카가와 료의 창피하지만, 일단 해봅니다 를 보고 다음의 문장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창피함은 이제껏 보지 못했던 풍경이 펼쳐진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러니 창피함을 표식으로 삼자.
창피함은 기회를 찾기 위한 신호다.
또한 창피함에 대한 면역은 빨리 키울수록 좋다.
면역을 빨리 키워놓으면 여러 가능성에 도전할 수 있다.
...
지금의 내가 창피함을 미리 투자해놓으면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적극적 선택을 고르기 쉬운 체질이 되어 있을 것이다.
창피함에 대한 소득은 지금 당장 체감하기 어렵지만, 미래의 나에게는 분명 큰 자산이 된다
그간 커리어에 관해서는 창피한 줄 모르고 이것 저것 시도했지만, 커리어외 적인 일에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내 속은 점점 창피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창피한 감정을 1년에 1~2번이라도 경험할 수 있도록 이것 저것 시도해봐야겠다.
그래야 이 감정에 익숙해지고, 내 체질도 바뀔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