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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목표 지연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5.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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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링을 종종 하다보면 "좋은 회사에 합격하면 그때 컨퍼런스에 나가서 발표를 하는 것이 목표" 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하는 것은 개발자로서는 좋은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서 적극 지지하는 편인데,
앞에 붙은 전제 조건인, 좋은 회사에 합격해야만 한다가 마음에 걸린다.

그래서 "왜 좋은 회사에 합격해야만 하는건가요?" 라고 질문하면, "대규모 트래픽, 대용량 데이터 처리, 서비스 회사의 경험이 없으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식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다" 라는 답변을 가장 많이 듣는다.

승려와 수수께끼에는 다음의 이야기가 있다.

추측컨대 레니는 아버지와 같은 운명을 피하고 싶은 생각에 잔인한 타협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오래도록 일하고 나서야 잠깐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운명.
이런 운명을 표현하는 공식적인 단어는 없다.
하지만 보험회사에서 일한 경력으로 볼 때, 레니라면 이 운명을 '미뤄 놓은 인생 설계(Deferred Life Plan)` 라고 부를 것 같았다.
이 보험 상품의 혜택을 완벽하게 받으려면, 인생을 두 부분으로 확실히 나눠야만 한다.
1단계: 해야만 하는 것을 해라.
(그렇게 미룬 후, 궁극적으로)
2단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비슷한 말을 수 없이 들으며 자란다.
'뛰기 전에 걷는 것부터 배워라' '첫 술에 배부르랴'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등...
...
실리콘밸리에서도 '미뤄 놓은 인생 설계'의 관점대로 사는 방식이 유행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빨리 부자가 되는 게 1단계를 가장 빨리 통과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
비즈니스 아이디어 대부분은 자금 지원을 받지 못한다.
자금을 지원받은 기업들, 즉 아주 똑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충분히 검토한 결과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판정을 받은 기업들 조차 대부분은 결국 실패한다.
운이 좋았던 몇몇 사람들도 2단계로 넘어가면 목적의식과 방향감각을 잃는다.
본인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를 생각해 본 적이 없거나 1단계에서 너무 많은 시간과 정신력을 할애한 나머지, 어떤 비전으로 나아가야 할지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도 커뮤니티를 통해 성장한 경우라서 커뮤니티에서의 활동을 지향하는 것에 적극 지지한다.
이 목표는 대단히 훌륭하고, 업계 전체에 항상 이렇게 커뮤니티에 기여하고자 하는 분들이 계시는건 좋은 일이고 응원한다.
근데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사전 조건을 달성하는 것에 대해서는 항상 우려를 표한다.

어떤 조건을 달성하고 나서 원하는 것을 실행하는 것에는 크게 2가지 문제가 있다.

  • 조건을 달성해도 원했던 목표를 실행에 옮기지 못할 수도 있다.
  • 하고 싶었던 것이 진짜로 원했던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 너무 늦다

큰 회사에 간다고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주제가 생기느냐? 라고 한다면 전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거의 공식화 되어있는 것이 많다.
그리고 이미 많은 시니어들이 그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어, 주니어인 경우엔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경험을 쌓기가 쉽지 않다.

몇년 간 큰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준비하고, 큰 회사에 가서 발표할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얻기 위해 또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고서 그때도 컨퍼런스 발표가 하고 싶어질까?
혹은 그때가서 발표를 해봤더니 그렇게 재밌지 않으면 그땐 어떡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건 즉시 실행해봐야 한다.
이를테면 좋은 서비스 회사에 합격하고 나서 컨퍼런스 발표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회사안에서 동료들을 대상으로 발표를 할 수도 있고 동아리, 친구들 앞에서도 내가 고민했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도 좋다.

현재 회사에서도 내 나름대로 고민한게 있다면 그걸로 여러 작은 컨퍼런스에서 발표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꼭 대형 컨퍼런스만이 컨퍼런스는 아니다.
주니어 개발자분들 혹은 아주 많은 제약이 있는 조직에서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컨퍼런스들도 많다.

젋은 개발자들이 발표하는 유스콘이나 AWS 한국 사용자 모임에서 운영하는 여러 소모임들, 요즘 활발하게 공유되는 타입스크립트 백엔드 모임 등등 다양한 주제로 많다.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내 나름대로 고민하고 해결한 방법은 뭐든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주제다.

큰 회사들의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고, 작은 조직에서의 경험, 취준생으로서의 경험, 주니어 개발자로서의 경험, B2B 서비스에서의 경험 등 다양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조직과 개발자들이 세상에 많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조건을 달성하지 않더라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다.
목표를, 하고 싶은 것을 지연시키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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