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낭만의 시대는 갔고, 야만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낭만은 비효율적이고 쓸모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하기 때문에 낭만이다.
"매출에 도움이 안되는 일이여도 고객이 좋아할 것 같으니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이 맞는가?"
이 질문에 대해 예전과 지금의 답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고객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아도 일단 해보자" 가 많았다면 지금은 "매출에 기여할 작업도 아닌데, 확실하지도 않으면 하지말자", "당장의 매출이 기여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등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는 이야기이다.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제품가로서는 아쉽다.
그래서 더 낭만가분들을 찾게 된다.
지금 같은 시기에도 낭만과 현실을 모두 다 쫓을수는 없을까?
현실을 무시하겠다는게 전혀 아니라,
둘 다 놓치지 않을 수 없을까.
책 속의 "아이디어란 여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 처럼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둘 다 가져가기 위해 다시금 읽었다.
'이와타씨에게 묻다' 는 출간 후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받고, 현 회사로 이직하고나서 매번 읽을때마다 생각할거리를 준 책이다.
닌텐도의 콘셉트이자 테마인 '게임 인구의 확대'
닌텐도 Wii의 컨트롤러를 '리모컨'으로 하자는 것 등
다시 봐도 두근두근한 마음이 생긴다.
이 책을 읽고 생전 처음 게임기인 닌텐도 스위치1를 샀다.
닌텐도 스위치에 맞는 게임도 샀다.
PC 게임을 위해 컴퓨터를 바꿔보긴 했어도, 닌텐도나 플레이스테이션과 같이 게임만 되는 전용기를 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제품가로서 이와타 사토루씨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프로그래머로서는 도저히 따라가기 어려울 것 같고,
(나는 키보드에서 드르륵 소리가 날만큼 타이핑 속도를 내지 못한다.)
제품가로서는 이와타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만드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도, 사용하는 사람의 주변 사람도 모두 '해피(happy)' 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
그래서 주말 동안 다시 읽고 지금 와닿은 내용들에 밑줄을 그었다.
닌텐도 스위치2가 나왔다고 갖고 싶어하던 조카가 생각난다.
다음 생일때 선물로 사줘야겠다.
책 속 문장
[만약 도망친다면 평생 후회한다]
나는 그때,
자신을 항상 바쁜 곳에 두기로 결심했습니다.
회사에는 몇 개의 팀이 있고 바쁜 시기는 서로 엇갈려 있었지만, 나는 가장 바쁜 팀을 응원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잘하는 것은 뭘까]
일이란,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보다 하는 편이 좋은 일이 확실히 많습니다.
따라서 하는 편이 좋은 일을 전부 다 한다면 쓰러지고 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자각한 후에, '무엇이 무엇보다 우선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 순번을 붙이는 것. 이것이 경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하는 일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매번 비슷한 에너지를 쏟으며 일했을 텐데, 이상하게도 고객들이 좋아해줄 때와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들이는 수고도 고생도 비슷한데 말이죠.
똑같이 100의 고생을 했어도, 왜 그런지 이쪽 고객은 100을 좋아하지만 다른 쪽 고객은 500을 좋아하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
요컨데, 자신들이 엄청나게 고생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이상하게 평가가 좋을 때란, 방치해두어도 좋은 결과가 자꾸자꾸 나와 선순환이 되면서 쑥쑥 힘이 나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적합한 일, 그렇지 않은 것은 적합하지 않은 일, 나는 대체로 이런식으로 판단합니다.
[마음 놓고 "바보같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나 말이야, 꽤 영리하지?" 라고 생각했던 일은 선배에게 모두 들킵니다.
하지만 들키고서도 자신을 둘러댄다면 인상이 몹시 나빠집니다(웃음).
결국 회사가 신입에게 가장 요구하는 것은 ‘겉치레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면서도 같은 일로 여러 번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말라는 점.
그리고 신입 중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확실히 훈계하기 쉬운 사람과 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 놓고 “바보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과 종기를 건드리듯이 조심스럽게 혼내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실은 굉장한 차이입니다.
내 쪽에서 줄 수 있는 양도, 그 사람이 흡수할 수 있는 양도 마지막에 가서는 어마어마하게 달라지니까요.
“바보같이!”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단기간에 매우 많은 것을 배웁니다.
...
비록 지식과 기술이 없더라도 '당신이 하는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라는 마음이 그 사람으로부터 전해져 온다면, 잘 안된 일이나 해야만 하는 일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고, 듣는 쪽도 그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종기를 건드리듯이 조심스레 꾸짖어야 하는 사람이란, '여기부터는 들어오지 마세요' 라는 장벽 같은 것을 주변에서 느끼도록 만들어버린 사람이지요.
그곳에 발을 들이면 그 사람이 망가져버리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이 신경 쓴다고나 할까요.
그 사람이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안다면 마음 놓고 "바보같이!"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화를 냈다가 그 사람의 소중한 것을 의도치 않게 짓밟아 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화를 내거나 훈계하는 일은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고 나름의 두려움도 있죠.
따라서 내가 하는 말을 신입이 받아들일 태세인지,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쉽게 말해, 가급적이면 ‘정말로 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일을 건네고 싶은 법이거든요.
인간이니까요.
싫어하는 듯한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일에는 힘들고 싫은 부분도 많습니다.
꼭 참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지만 아마도 그 사람에게 ‘일이 재미있을지 여부’는
‘자신이 무엇을 즐길 수 있는가’에 따라 크게 좌우되겠지요.
생각하기에 따라 일이란 재미없는 것투성이지만
재미를 찾는 일에 재미를 붙이면 무슨 일이든 대부분 재밌습니다.
이 갈림길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나 외의 다른 사람에게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지 여부]
참고로, 나의 이러한 자세는 내가 30대 초반일 즈음 이토이 시게사토씨와 만나며 배웠습니다.
나보다 10살 이상 연상인 이토이씨가 자신이 모르는 일을 해내는 사람에게 상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는 모습을 보고 ‘멋지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거든요.
덧붙이자면 ‘이토이씨는 자신이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해 솔직하게 감동하고 존경심을 가질 뿐이지, 이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와타씨의 말 조각, 두 번째]
큰 조직일수록 “이번에는 이것에 매진하기로 결정!”
이런 것이 필요하더라고요.
왜냐하면 회사에는 하는 편이 좋은 일이 무한정 있으므로 누군가 방침을 정하지 않으면 파워가 점점 분산될 뿐이거든요.
따라서 미야모토씨 나름, 나 나름대로, “이것을 합시다”라고 명확히 선택해야만 합니다.
[보상을 찾아내는 능력]
게임에는 바로 그만둬버리는 게임과 ‘뭔가 해내고 말테다’인 게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성스럽게 완성한 게임이라도, 본질적인 재미와는 다른 차원에서 계속하는 게임과 계속하지 않는 게임이 있지요.
이를 비롯한 여러 습관은 지속성 측면에서 굉장히 유사합니다.
둘의 공통점이라면, 사람은 우선 그 대상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시간이든, 노력이든, 돈이든.
그리고 쏟아부었으면 쏟아부은 만큼 뭔가가 반응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자신에 대한 보상이 됩니다.
이때 자신이 쏟아부은 노력이나 에너지보다 보상이 더 크다고 느끼면 사람은 그것을 그만두지 않습니다.
하지만 되돌아온 보상이 대가로서 걸맞지 않다고 느낄 때
사람은 좌절하지요.
이것이 ‘그만두지 않고 계속하는 게임’의 조건입니다.
‘영어를 공부할 때 좌절하는지 여부’도 같은 이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따라서 재능이란, ‘보상을 찾아내는 능력’이지 않을까요.
‘끝까지 해내는 것’보다도 ‘끝까지 해낸 일에 쾌감을 느끼는 것’이 재능이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보상을 찾아내는 ‘보상 발견 회로’와 같은 것이 열려 있는 사람이지요.
가끔은요, 보상을 찾아내기 직전까지 갔음에도 이 회로가 열리지 않는 사람이 있거든요.
이때,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라든가 "속는 셈 치고 앞으로 세 번 더 참아보자" 이런 말을 하면 잘될 때가 있습니다.
...
자신이 쏟아붇은 것 보다 보상이 더 크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면 선순환이 시작되고 이것은 계속 이어집니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에서 '이것을 잘할지도' 라고 생각하는 일에는 무조건 보상회로가 열려 있습니다.
...
이런 연결을 발견할 수 없으면 잘하는 일이 늘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프로그램만을 전문으로 만들던 시기에는 조직이나 경영 관련 책을 읽어도 연결되지 않으니, 진정한 의미로는 머리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확실히 지식은 늘어나지만, 성취감은 없습니다.
‘내일 이거 써먹어야지’ 이런 것이 없으니까요.
그러면 ‘보상’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기 주변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무리해서 공부해도 몸에 익지 않습니다.
그것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우선시해야겠지요.
["프로그래머는 노(No)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라는 발언]
나는 예전에 “프로그래머는 노(No)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게임 제작 과정에서 프로그래머가 “못한다”라고 하면, 모처럼 나온 아이디어가 실현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도 나오기 어려워집니다.
프로그래머가 프로그래밍하기 쉬운 것만 생각한다면 한계를 뛰어넘는 훌륭한 아이디어 따위는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처음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시행착오를 겪는 와중에 종종 실현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프로그래머는 경솔하게 “노”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본질적으로는 맞다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내 책임입니다만, 내 발언이 조금은 외따로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프로그래머가 “노”라고 말하면 가능성이 닫혀버리는 게 사실이지만, 모든 개발의 조건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게임 제작이란 유한한 제약 속에서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정말로 못하는 것은 “못한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어도
“할 수 있지만, 이것이 희생될 거예요”
“할 수 있지만, 이것과는 양립할 수 없어요”
와 같은 표현을 서로 명확히 이해한 후에 진행해야 합니다.
이런 부분을 “프로그래머는 노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과
함께 세트로 해두었으면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로그래머는 못한다고 말하지 마!” 이런 식이 되지 않도록 말이죠.
[당사자로서 후회가 없도록 우선순위를 정한다]
확실히 나는 곤란한 사람이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집니다.
정확하게는, 눈 앞에 문제가 있으면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
물론 시간이 무한정 있지는 않으므로, 그 사람이나 그 문제를 최종적으로 얼마만큼의 시간 동안 함께할지는 선택해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딜레마입니다.
...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시간의 제약을 받게 됩니다.
소위 '효율적으로 일하자' 라는 착실함만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시시한 것을 멍하니 생각하는 시간 또한 결코 헛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면 결국, '자신의 유하한 시간과 에너지를 어디에 쏟는 편이 좋을까'라는 문제가 됩니다.
계속 생각하다보면 '자신이 태어난 의미'까지 고민하게 됩니다.
어느 쪽이든 영역만 넓어질 뿐이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회사로서의 선택도 그렇지만, 막연히 대중을 향한 행동이 되어버리면 전체를 위해 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하나를 신경 쓸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면 깊이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부차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없습니다.
[이와타씨의 말 조각, 세번째]
예를 들어 어느 음식점에서 손님이, 나온 요리를 보고 ‘많다’라고 합니다.
이때 ‘많다’라고 한 사람은 왜 ‘많다’라고 했을까요.
그 밑바탕에는 사실 ‘많다’가 아니라 ‘맛없다’가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은 그다지 많지도 않은데 ‘많다’라고 했던 문제만을 보고
‘맛없다’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양을 줄인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가 '맛없다'라면, '맛없다'를 고치지 않고 "많아서 양을 줄였습니다" 라고 해봤자 얼핏 해결된 듯해도 실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란 여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
"아이디어란 여러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그렇겠지만, 뭔가를 만들 때 '저쪽을 세우면 이쪽이 서지 않는' 문제는 항상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제품을 만들 때, '곤란한 일이 한 가지뿐'인 복 받은 일 따위는 없습니다.
곤란한 일은 이곳저곳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이건 이러니까 이러면 좋습니다"라며 한 가지를 개선하더라도 전체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노력해서 하나를 잘하더라도, 뭔가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고 지금까지 잘되던 일이 잘 안되기도 합니다.
...
그런데 때때로, 그저 한 가지를 했는데 이쪽도 잘되고 저쪽도 잘되고 게다가 예상치 못했던 문제까지 해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한 가지'를 마야모토씨는 "없을까, 없을까" 하면서 항상 고민했던 거지요.
엄청 끈질기게, 끝없이요.
[마야모토씨의 '어깨 너머의 시선']
옛날의 나처럼, “나는 이게 좋네요”라며 모든 고객을 대표하듯 확신에 차서 말하는 제작자는 많습니다.
실은 ‘고객은 이렇게 반응한다’라는 사실과
‘이건 왜 그럴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자 그럼, 어떻게 하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사실과 가설이 뒤죽박죽 섞인 의견을 관철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야모토씨의 특별한 점은, 자신이 고집하는 부분에서는 엄청 제멋대로인 반면
기기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는가에 관해서는 굉장히 냉정하게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고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라고 깨달으면
재빠르게 잡아 빼서는 다르게 생각해봅니다.
[이와타씨의 말 조각, 네번째]
나는 천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일이나 사람들이 지쳐 계속할 수 없을 법한 일을 끝없이 계속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천재'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는 않는 일이라든가
어찌 되었든 끝없이 파고드는 일.
피곤하면서 대가가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고, 몹시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것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고생이 아니지요.
이것을 고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고생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을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재능이지요.
스스로가 고생으로 여기지 않고 계속할 수 있어서 가치 있는 일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은 이것만으로도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게임기]
게임기는 그 기계 자체의 성능보다도 어떤 환경에서 놀 수 있는가를 철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어느 각도에서 봐도 매력적'인 게임기를 목표로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완벽한 게임기를 만들고자 한다면, "애초에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같은 논의가 시작되면서 끝없는 자기점검을 반복하는 상황이 됩니다.
...
옛날에 게임이 아주 잘나가던 시기에도, 자신은 게임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게임기를 만지지도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조차 왠지 이 기계는 해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유익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하고 싶습니다.
일상적으로 접하다보면 어느새 비디오게임의 재미를 알게 되겠죠.
이런 사람이 점점 늘어난다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원래 비디오게임기란, '텔레비전을 놀이 도구로 삼는 기기'를 뜻하지만 이 놀이 도구의 정의가 향후에는 점점 더 넓어지리라 생각하거든요.
집에 돌아오면 무의식적으로 텔레비전을 켜는 사람이 많습니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특별히 없어도 텔레비전 전원을 켜는 것은 왜일까요.
집에 돌아왔을 때 일단 바로 옆에 있는 리모컨으로 스위치를 켜면 항상 뭔가가 나오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좀더 행복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심리가 바탕에 있으므로 텔레비전이 이토록 많이 세상에 보급되었겠죠.
이렇게 일상적으로 게임기의 전원을 켜게 될 때가 가장 기다려집니다.
이상한 말이지만, 게임기에 전원만 켜지면 이후는 우리들의 실력 발휘인 셈입니다.
아니 그렇지만요,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비디오게임기에 전원을 켜게 하는 일이 말이죠.
[황당한 주장에서 시작한 논의라도 헛되지 않다]
나는 Wii를 개발하면서, '가정에서 게임을 적대시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가설이 실은 황당한 주장에 가깝기는 하지만, 부모가 게임을 '하루 1시간'으로 정했다면 게임을 시작하고 1시간 후에 정말로 전원이 꺼져버리는 사양은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
결국, 이 논의로부터 생겨난 것이, 어떤 게임을 얼마나 플레이했는지를 모두에게 알려주는 '게임 이력'입니다.
'게임은 하루 1시간' 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제로 전원을 꺼버리기보다는 '게임 이력'을 통해 부모와 아이가 서로 소통하며 약속을 지키는 흐름을 만드는 편이 훨씬 매력적이거든요.
[라이트 유저와 코어유저]
나는 Wii 컨트롤러의 정식 명칭을 '리모컨'으로 하자는 의견을 강하게 요청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고집스러웠지요.
왜냐하면 집에서 텔레비전 리모컨이란, 대게는 흔히 손이 닿는 위치에서 굴러다니면서 모두가 일상적으로 손에 들고 조작하잖아요. 이 리모컨과 게임의 컨트롤러를 똑같이 취급해주길 바랐고 게다가 최종적인 형태마저 비슷했기 때문에, '리모컨으로 불러야 한다' 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째서 텔레비전 리모컨은 가족 모두가 만지면서 게임기 컨트롤러는 만지지 않는가' 이것이 Wii를 개발할 때의 중요한 콘셉트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이것은 리모컨입니다!"라며 우겨댔지요.
...
애초에 라이트 유저나 코어 유저를 분리하여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처음에는 라이트 유저였을 테니까요.
라이트 유저로 시작해, 개중에는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게임이 좋아졌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뭔가 양쪽의 태생이 다른 것인 양 너무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을 무시하고 처음부터 이런 것처럼 잘라서 이야기하면 오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와타씨의 말 조각, 다섯번째]
온라인게임이란, 아무래도 기본적으로는 강자를 위한 영역이어서 한 명의 행복한 사람이 존재하면 백 명 천 명의 불행한 사람이 생겨나는 듯한 면이 있습니다.
이 구조를 전부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런 요소가 있는 한은 어떻게 해도 게임 인구가 일정 크기 이상으로는 퍼지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설령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 있어도 입구 근방에서 많은 사람이 주저하고 말 것이라고.
그래서 이런 형태가 아니라,
예를 들어, '부모가 자기 자녀에게 안심하고 온라인게임을 건네주려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라든가,
'괴롭힘 없는 세상은 어떻게 해야 가능할지', 이 같은 문제들을 계속 논의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피드백이 있으면 이로 인해 당므 동기가 생겨납니다.
반대로 말하면, 피드백이 없는 일은 계속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피드백이라는 보상을 받아야 움직이는 셈이지요.
온라인게임의 세계에서는 이것을 역으로 이용해서, '인간이 뭔가를 하면 피드백이 돌아온다' 라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이때 피드백에도 기분 좋은 피드백과 좋지 않은 피드백이 있어서 '이 둘을 어떻게 적절히 섞어야 사람들이 게임을 계속하며서 재미있어 하거나 놀라거나 할까', 이런 것을 항상 염두에 두면서 만들고 있습니다.
[책과 회의와 서비스 정신]
이와타씨는 책 속에서 힌트를 구한다기보다는, 평소 생각하던 바를 입증하거나 자기 생각을 책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 유용하게 사용하는 듯했습니다.
'닌텐도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 회사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 등을 항상 고민하면서, 책 속에 자기 생각과 같은 내용이 쓰여있으면 더욱 확신에 차곤 했습니다.
'이 책을 직원에게 권해서 읽게 한다면 자기 생각도 설명할 수 있고 회사 내 의견통합도 도모할 수 있다' 라는 식으로 책을 활용했습니다.
책을 여러 권씩 사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전체 직원에게 추천 도서를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가시화'와 전원 면담]
예를 들어 뭔가 문제가 있어 고객을 기다리게 만들었을 때, 문제가 생겼다는 그 자체보다도 '당장 고객에게 설명을 못하고 있다' 라는 상황에 엄격했습니다.
이 점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자신만은 '실수 없이 잘하고 있습니다' 인 듯한 태도에는 화가 납니다.
회사 안에서나 본인 주면으로는 실수 없이 잘하지만, 당사자인 고객에게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거나 역으로 불안하게 만드는 경우가 생깁니다.
"회사 안팎으로 조정을 거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런 태도로 고객을 기다리게 할 때, 이와타씨는 화를 냈고 나도 이런 것에는 화가 납니다.
[이와타씨의 말 조각, 여섯 번째]
명함 속에 나는 사장입니다.
머리 속에 나는 개발자입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나는 게이머입니다.
나는 꼭 당사자가 되고픈 사람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누군가가 좋아해 주거나 고객이 기뻐하거나, 항상, 뭔가를 가져다주는 당사자이고 싶습니다
당사자가 될 기회가 있는데도, 그걸 알면서도,
"손을 대면 상황이 좋아질 수도 있고 뭔가를 더해줄 수도 있지만, 힘들어질 테니 하지 않겠어." 이러면서 당사자가 되지 않은 채로 있는 것이 나는 싫다고 할까, 그러지 않으면서 살아왔지요.
그러지 않으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재미있는 일도 많았습니다.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 힘이 있으면 죄다 쓰려고요",
이런 느낌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