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대 사람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서로간의 '이득' 이라는 것을 책 한권을 통해 전달하는 것으로 읽혔다.
이득 기반으로 인간 관계가 움직인다는 사상을 인정하고 좋아하기에 전체적인 내용을 많이 동의했다.
내 기준에서 회사는 4단계의 계층이 있다고 본다.
- 대표
- C레벨 혹은 임원
- 중간 리더
- 팀원
이 중 이 책에서 언급되는 "군주"는 사실상 회사의 대표라고 볼 수 있는데, 대표에게 직언을 할 수 있는 위치인 C레벨 (혹은 임원)은 이 책의 여러 고사들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아래 메세지들은 지금의 내 위치에서 생각해볼 것들이 많았다.
- "군주에게 간언하고 설득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살펴 본 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누군가를 설득할 때에는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끼거나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 "일반적으로 군주들은 신임하지 않는 자가 간언하면 비방한다고 생각하고, 신임하는 사람이 간언하지 않으면 봉록만을 훔치는 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군주에게서 충분한 신임을 얻기 전까지는 간언을 조심해야하며, 신뢰를 얻은 후에는 간언을 계속 해야하며, 신뢰의 정도에 따라 간언의 수위를 조절해야하며, 간언을 전달할 때는 최대한 역린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전달해야한다" 로 정리될 수 있다.
이 내용은 군주에게 간언해야하는 위치의 사람들이 항상 생각해야할 것들이다.
회사로 본다면 아마도 C레벨과 임원들이 해당될 것 같다.
종종 회사에 합류하자마자 바로 어떠한 액션을 취하려고 강한 주장을 하거나 대표에게 직언을 하는 리더나 임원들의 이야기들을 들을때가 있다.
그리고 그 리더는 대부분 얼마가지 않아 퇴사를 했다는 것도.
상위 직급자와 나와의 신뢰 관계는 어느 정도이며, 이 정도에서는 어디까지의 이야기가 허용 가능한지 판단할 수 있는 시야를 갖고 있는 사람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C레벨 혹은 중간 리더는 본인의 신뢰 자산을 기반으로 아직 충분한 신뢰 자산이 쌓이지 않은 팀원들의 건설적인 의견을 대표에게 잘 전달해야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태호님이 작성하신 쿠팡의 통역가분들에 대한 이야기 를 보고나서, 이것이 조직의 중간 리더의 역할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커지면 상하 위계 간은 물론이고 각 조직 간의 크고 작은 이해관계와 알력다툼이 만연하며 성장 속도가 늦어지는데, 어째서 쿠팡은 이렇게 되지 않았고 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까?”
나중에 문득 깨달은 것이지만, 나는 바로 쿠팡의 통역사분들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감히 생각한다.
쿠팡은 한국 본사의 임원진부터 글로벌 오피스의 실무자까지 많은 외국인들과 함께 일한다.
업무 시 공용어는 한국어보다는 영어다.
모든 주요 문서는 영어로 작성되고 모든 주요 미팅에는 전담 통역사가 함께 들어와 실시간 통역을 지원한다.
그런데 이분들의 실시간 통역이란 것이 단순히 영어를 한글로, 한글을 영어로 바꿔 말하는 게 다가 아니더라.
쿠팡의 통역사분들은 수많은 미팅에 들어가고 문서를 검토하며 회사 전반과 각 조직의 가장 많은 정보와 컨텍스트를 갖고 있어 이것이 마법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오해를 살 수 있는 표현을 해도 -> 통역이 오해 없도록 명확한 용어로 바뀐다.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해도 -> 통역 시 가볍게 다시 물어 정정할 수 있도록 한다.
누군가 조직 이기주의 등 편협한 소리를 해도 -> 통역이 톤앤매너를 조절해 건설적으로 이것이 논의될 수 있는 기회로 바꾼다.
미팅이 같은 말을 반복하며 빙빙 돌고 있어도 -> 통역이 간파하고 원래의 주제에서 결론을 낼 수 있도록 넛지를 한다.
누군가 너무 감정적이거나 화를 내도 -> 통역이 그 감정이 잠시 담길 작은 버퍼가 되어준다.등등등
정말 수많은 부분에서 통역사분들의 역량이 발휘된다.
굉장한 건 이것들이 미팅 안에서 절대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통역사가 주인공이 되는 일은 없다.
다만 그 미팅은 여러 함정을 무사히 넘기고 좋은 의사 결정을 이룬다.
누군가 정말 잘하는 것들은 그대로 스며들어 당연한 것이 되지 잘한 티가 나지 않더라.
팀원들은 아직까지 조직간 관계나 처세 등에 대해 익숙하지 않다.
대표와의 신뢰 관계도 충분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팀원 -> 대표로의 간언은 유효할 확률이 거의 없다.
이때 중간 리더가 (쿠팡의 통역처럼) 팀원의 의견을 잘 해석하여 대표가 설득될 수 있는 수준으로 포장하여 전달해야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중간 리더의 신뢰 자산은 그러라고 쌓는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조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다.
조직 내에서 해야할 일들에 대해서 "이 일은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다" 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귀결 될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조직장으로서는 이 일을 개인을 위한 일 인것처럼 느껴지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하고,
개인은 어떻게 하면 이 일이 나에게 도움이 되도록 해석할 것인가가 전체적인 삶의 만족도를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책 속 문장
한비자는 인간은 이해득실만을 따질 뿐 도덕성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을 부모가 낳은 아이가 아들일 경우와 딸일 경우 보여주는 행동의 차이로 설명했다.
아들이나 딸 모두 부모의 품에서 나왔지만, 아들을 선호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부모 자신의 노후를 걱정한 데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이해관계는 늘 어긋난다.
예컨대 군주와 신하가 생각하는 이익이 각기 다르며, 남편과 아내, 형과 아우 사이에도 이해는 서로 엇갈리기 마련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군주와 신하는 남남이 만나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관계이므로 군주가 신하에게 충성만을 요구한다거나 도덕만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옛날 미자하는 위나라 왕에게 총애를 받았다.
위나라의 범에 왕의 수레를 몰래 타는 자에게는 발이 잘리는 형벌을 내리도록 하였다.
미자하의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 어떤 사람이 밤에 몰래 와서 미자하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미자하는 슬쩍 왕의 수레를 타고 나갔다.
왕은 이 일을 듣고 그를 칭찬하며 말하였다.
"효자로구나. 어머지를 위하느라 발이 잘리는 벌도 잊었구나!"
다른 날 미자하는 왕과 함께 정원에서 노닐다가 복숭아를 따먹게 되었는데, 맛이 아주 달자 반쪽을 왕에게 주었다.
왕이 말하였다.
"나를 사랑하는구나. 맛이 좋으니 과인을 잊지 않고 맛보게 하는구나"
세월이 흘러 미자하의 미모가 쇠하고 왕의 사랑도 식게 되었을 때 한번은 미자하가 왕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자 왕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놈은 옛날에 과인의 수레를 몰래 훔쳐 타기도 하고, 또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과인에게 먹으라고 내밀기도 하였다."
미자하의 행동은 변함이 없었으나 전에는 칭찬을 받았지만 뒤에는 벌을 받은 까닭은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
군주에게 간언하고 설득하는 자는 군주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미워하는지 살펴 본 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비단 왕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저마다 역린이 있다.
누군가를 설득할 때에는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끼거나 부끄러워하는 감정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할지라도 외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려 나의 의도를 그에게 맞추려면 상대방의 역린을 읽어낼 수 있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설득은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므로 논리보다는 감성이 앞선다고 할 수 있다.
노자는 통치술의 첫째로서, 통치가의 존재 그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앞에 나서서 설치는 자는 최상의 군주가 아니고 뒤에서 조용히 조종하는 자가 최상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존재 자체도 느끼지 못할 때 그것이 최상이다.
일반적으로 군주들은 신임하지 않는 자가 간언하면 비방한다고 생각하고, 신임하는 사람이 간언하지 않으면 봉록만을 훔치는 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신하들은 충성스러운 간언을 할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으면 침묵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당 태종은 간언을 독려한다.
"사람이 자기 얼굴을 보려면 반드시 맑은 거울이 있어야 하고, 군주가 자기 허물을 알려면 반드시 충직한 신하에 의지해야 하오.
군주가 만일 자신을 현인이나 성인이라고 여기는 착각에 빠져있고, 신하도 정확한 의견을 제시하여 바로잡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에서 위험과 실패를 면하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소?
군주가 국토와 사직을 버리면 신하 또한 자신의 집안을 보존할 수 없소.
수양제는 잔인하고 포학했지만 신하가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자기에게 어떤 허물이 있는지 듣지 못했소.
결국 나라는 멸망했소.
우세기 등의 대신 또한 오래지 않아 피살되었소.
이것은 과거 오래전의 일이 아니오.
대신들은 내가 백성들에게 불리한 일을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반드시 거리낌 없이 직언을 하여 비판 해야 하오."
한비자는 도성을 떠나 유람을 가는 것 또한 지극히 경계했다.
군주가 궁궐을 비우고 외부로 떠나는 것은 결국 궁정의 긴장감을 무너뜨리게 되므로, 조직의 긴장도를 위해 군주는 유람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이가 어릴 때 부모의 양육이 소홀하게 되면, 그 자식은 성장하여 부모를 원망하게 된다.
또 그 자식이 장년이 되었을 때 부모에 대한 효도를 망각하면, 그 부모는 자식을 책망하게 될 것이다.
부자 사이는 가장 친밀한 사이임에도 책망하거나 원망한다는 것은 서로 상대가 자기를 위해서 일을 한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을 고용하여 씨앗을 뿌리거나 경작을 시킬 때, 주인이 집안 살림에서 과용을 하며 좋은 음식과 쫗은 옷을 주고 노동의 대가로 돈도 챙겨주는 것은 그 아랫사람을 배려하기 때문이 아니다 .
그렇게 후하게 대해야만 깊이 땅을 팔 것이며, 잡초를 샅샅이 뽑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이다.
...
결국 주인과 일하는 사람 양쪽 모두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이익이 되도록 일을 하면 적대적인 나라 사람과도 우호적으로 지낼 수 있고, 자기 이익을 떠나게 되면 부자지간도 서로가 원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
남을 위해 죽도록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과 목표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면 상대에 대한 평가도 어렵지 않으리라.
ps.
여담이지만, 챕터별로 편차가 있지만, 챕터의 제목과 챕터의 전반부/후반부의 내용이 상이해서 생뚱 맞다는 느낌을 받았다.
챕터의 첫번째 사례로 드는 고사는 제목과 잘 어울려서 챕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두번째, 세번째 고사는 사실 챕터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어울리지 않을 때가 많아서 띠용한 적이 종종 있다.
예를 들어 "15. 만족을 모르면 근심도 떠나지 않는다" 에서 2번째 고사는 새옹지마 사례다보니 '일희일비 하지 않는다' 라는 주제에선 어울리겠지만,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를 이야기해야하는 이 챕터에서는 전혀 어울리는 고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외에도 이런 사례가 많아서 책의 좋은 내용과 별개로 책에 대한 평가를 할 때 '절하' 되는 근거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