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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정리

틀려도 다시 말하지 않기

by 향로 (기억보단 기록을) 2026.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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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혼자 소리 내어 말하는 일이 많아졌다.

샤워를 하면서 질문 하나를 정해 두고 혼자 답한다.
늦게까지 일한 날, 사람이 거의 없는 회사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에도 누군가 내게 질문했다고 생각하고 답하기도 한다.

왜 지금 이 일을 하는지, 최근 가장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결정을 할 것인지 등등.

답을 미리 적어 두지는 않는다.
충분히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는다.
첫 문장부터 바로 말한다.

생각을 정리할 때는 주로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걸 자주 깨닫게 된다.
머릿속에서는 분명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설명하지 못할 때가 있다.

글은 몇 번이고 고칠 수 있다.
앞 문장으로 돌아가 지울 수도 있고, 문단의 순서를 바꿀 수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지우고 다시 쓸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전까지 초고는 나에게만 있다.

말하기는 다르다.

말에는 초고가 없다.

말하고 나서야 표현이 이상했다는 걸 알 때가 있다.
그때는 이미 상대가 그 말을 들은 뒤다.
다시 설명할 수는 있지만, 처음 한 말을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사과도 정정도 그다음에 해야 한다.

그래서 혼자 말할 때는 규칙을 하나 세웠다.
중간에 말이 꼬여도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방금 한 말이 정확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뒤, 내가 말하려던 뜻을 설명한다.
앞에서 한 말과 지금 하려는 말이 맞지 않으면 잘못 말한 부분부터 바로잡는다.

다시 시작하면 더 매끄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연습하려는 건 매끄럽게 말하는 일이 아니라, 잘못 말한 뒤에 바로잡는 일이었다.

실제 대화에서는 예상하지 못한 반응도 생긴다.
상대는 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한 부분을 다시 묻거나 전혀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럴 때는 준비한 답을 그대로 이어갈 수 없다.
어디에서 다르게 이해했는지 확인한 뒤 다시 설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중요한 결정을 알리는 말까지 준비 없이 하자는 뜻은 아니다.

이 연습이 말할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리더로 오래 일하면서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조직을 이렇게 구성하지 말았어야 했다거나, 제품의 첫 방향을 다르게 잡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판단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여러 사람이 그 결정에 맞춰 일하고 있었다.
그 결정에 따라 만들어진 기능도 있었고, 내가 설명한 방향대로 일을 진행한 사람도 있었다.

다음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다짐으로 지금 벌어진 일이 나아지는 건 아니었다.

잘못 판단한 부분을 인정하고, 부족했던 설명을 다시 하고, 바꿔야 할 것을 바꿔야 했다.

돌이켜보면 시작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일도 많았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잘못 판단했다는 걸 알게 된 적도 있었다.
오래 고민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를 미리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혼자 말할 때 첫 문장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

말이 틀렸다면 바로 그다음 문장에서 고치고, 설명이 부족했다면 이어서 보탠다.
그렇게 샤워가 끝날 때까지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말한다.

일에서도 말에서도, 처음부터 틀리지 않는 능력이 있다면 좋겠지만 나한텐 그런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틀렸다는 걸 알게 된 뒤 그다음 문장을 말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ps)

요즘 GPT에 마이크를 켜고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것도 꽤 재미있다.
두서없이 말해도 알아서 정리해 주고, 녹음만 남겨 두는 것보다 나중에 다시 꺼내 쓰기도 편하다.
이 글도 GPT에 먼저 말한 내용을 정리해서 썼다.